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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소리나는 물건들 (조선일보 2014년 8월22일)

조회 수 3101 추천 수 0 2014.08.22 12:48:23
주인님이 마신 음료는 250 칼로리이고요저녁때 왼쪽 아랫니 칫솔질이 부족하군요변기에 앉으세요, 음악 들려드릴테니…^^

요즘 ‘스마트(smart)’처럼 흔한 말이 또 있을까. 스마트폰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주위의 모든 것이 하나둘 스마트해지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컵, 신발, 칫솔, 장난감 심지어 변기마저도 IT(정보기술)를 만나 사람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의 스마트화

무생물(無生物)이 IT를 만나면 괄목상대(刮目相對)할 존재로 변한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컵 '베슬(vessyl)'이다. 컵 안에 무언가를 따르면 내부의 센서가 물·커피·맥주·주스·요거트 등 어떤 음료인지 곧바로 감지해낸다. 스타벅스의 모카 프라푸치노인지 하이네켄의 맥주인지 브랜드까지 감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컵에 따른 음료의 칼로리가 얼마인지, 설탕과 카페인은 각각 얼마나 들었는지도 분석해낸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오늘 하루 내가 얼마의 음료를 마셨는지도 기록해준다. '주인님'이 물 마시는 게 뜸하다 싶으면 물 마시라고 알람도 울린다.

스마트폰 속 내비게이션 없이도 길을 찾아갈 수 있다. 100달러 안팎의 가격인 스마트신발과 스마트벨트가 이끄는 대로 걷기만 하면 된다. '리챌(lechal)' 신발을 신고, 스마트폰의 '구글 맵(map)'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방향을 꺾어야 할 지점에서 왼쪽 혹은 오른쪽 신발에 '부르르'하고 진동이 울린다. 아무리 낯선 곳에 가도 현지인처럼 여유 있게 다닐 수 있다. 신발을 신고 얼마나 걸었는지 운동량을 체크하는 것은 기본이다. '트래블벨트(travel belt)' 역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허리에 찬 벨트를 통해 전·후·좌·우 네 가지 진동 방식으로 알려준다.

스마트폰을 살짝 갖다대면 문이 열리는 스마트도어록도 곧 출시된다. 열쇠를 뒤적이거나 남이 볼까봐 몰래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된다. '지니 스마트록(genie smart lock)'을 문에 달고 스마트폰에 앱 하나만 깔면 곧바로 집 열쇠가 된다. 블루투스(근거리 무선 통신) 기능을 통해 주인의 스마트폰을 감지해 문을 열어주는 방식이다. 집에 놀러 온 친구의 스마트폰에 무선으로 일회용 전자키를 보내줄 수 있다. 누가, 언제 문을 열고 닫았는지도 차곡차곡 기록한다.

일본의 건자재업체 릭실(lixil)이 개발한 스마트변기 '새티스(satis)'는 스마트폰과 연동해 맞춤형으로 주인을 모신다. 변기 위에 턱 앉으면 미리 설정해둔 선호 음악이 변기에서 흘러나온다. 스마트폰 앱을 톡톡 두드리면 비데 작동부터 수압 조절까지 변기의 모든 기능을 세세하게 조종할 수 있다.

이 닦기 귀찮아하는 어린이들에겐 스마트칫솔이 제격이다. 프랑스 벤처업체가 만든 '콜리브리(kolibree)' 칫솔은 내장된 3D 센서를 이용해 사용자가 구석구석 이를 잘 닦는지 체크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빼놓고 안 닦은 이는 없는지, 양치 시간은 충분했는지를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양치를 할 때마다 점수를 매기고, 잘하면 배지(badge)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마치 놀이와 같은 기분을 준다. 가격은 199달러.

어린이들이 기뻐할 만한 또 하나의 발명품은 스마트 장난감이다. 레고가 출시한 '레고 퓨전(fusion)'은 여느 블록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스마트폰·태블릿PC의 레고 앱과 연동된다. 블록을 만들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면 자동으로 레고 퓨전 게임 앱 속 '3D 입체 블록'으로 살아난다. 예를 들어 게임마을 속에 불이 났을 땐 얼른 블록으로 소방서 건물을 만들어 찍으면 된다. 그러면 마을에 실제 소방서가 생기고 소방관이 출동해 불을 끈다. 오프라인으로만 갖고 놀던 블록을 스마트 기기와 자연스럽게 결합시킨 것이다. 현재 미국에서 34.99달러에 판매한다.

이 같은 스마트 기기 중 상당수는 시제품(試製品) 상태로 곧 출시될 예정이다. 대량생산 자금 마련을 위해 사전 주문을 받는 제품도 있다. 스마트컵 베슬의 경우 99달러로 사전 주문하면 내년 초에 받아볼 수 있다.

스마트 세상의 명암

스마트 기기들이 결합하면 더 큰 세상이 열린다. 스마트신발에 저장된 운동 기록을 스마트컵에 전송해 주인에게 물을 마시라고 알람을 울릴 수 있다. 스마트칫솔을 손에 쥐면 실수로 변기에 빠뜨리지 않도록 스마트변기가 자동으로 뚜껑을 닫을 수도 있다. 사람의 개입 없이 기기들 스스로 통신하는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이 우리 삶 속으로 성큼 들어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미국의 사물인터넷 업체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마트싱스는 하나의 모바일 앱을 통해 원격으로 집을 모니터하고 온전히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 현재 1000개 이상의 기기와 8000개 이상의 앱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고도의 스마트화(化)는 해킹의 위험 역시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컵과 신발, 변기에 저장된 사용자의 소소한 기록과 습관, 취향들이 고스란히 해커에게 넘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발과 벨트를 해킹하면 주인이 자주 가는 장소와 선호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 컵에 담긴 정보를 통해 어떤 음료를 주기적으로, 얼마나 마시는지도 알 수 있다. 기업의 세세한 마케팅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정보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서 대충 해왔던 일들을 스마트 기기는 정확한 정보로 기록한다는 점에서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스마트변기는 내가 선호하는 비데의 수압(水壓), 물살을 쏘는 위치, 용변을 보면서 듣고 싶은 음악과 같은 소소한 정보들을 일일이 저장한다. 실제로 미국의 정보 보안업체 트러스트웨이브는 스마트변기 '새티스'가 보안에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변기를 조종하는 스마트폰 앱의 비밀번호가 모두 '0000'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 누군가 해킹할 마음만 먹으면 남의 집 변기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용무가 급해서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해커가 원격으로 변기 뚜껑을 꽉 닫아놓는 황당한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스마트도어록을 풀고 들어가 도둑질을 할 수도 있다.

성균관대 정태명 교수(소프트웨어학과)는 "우리는 지금 스마트화에만 급급해 보안은 뒷전인 경우가 많다"며 "시작부터 보안을 고려한 설계, 구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큰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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